'Busking'이란?

길거리공연에서 행인들에게 돈을 얻으며 연주하는것을 말한다.

아래의 글은 내가 2010년 6월 당시에 아일랜드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했었던

거리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몇자 적어보았다.


우리 공연의 기획자는 술.





 2010년 6월무렵. 나는 유럽의 서방의 작은섬 아일랜드에서 어학연수중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형님들과 저녁시간에 거하게 드링킹을 하던도중 나의 뜬금 없는 제안 하나가
우리를 길거리로 나가게 했다. 기타를 십수년간 쳐왔던 노군(26, 오른쪽), 목소리에 소울이
담겨있는 이군(26, 왼쪽), 그리고 아무것도 못하는 나(25, 가운데) 셋이 거리공연을 해보자는
아주 어이없는 제안이 술때문이 었는지 흔쾌히 통과되었던 것이다. 
 
 나는 지인에게 젬베(가운데 치고있는 아프리카 북, 슈퍼스타K에서 조문근씨가 쳤던)를 빌리고 
노군은 한국에서 공수해온 자신의 기타를 들고 이군은 노래가사를 외우며  1주일동안 랭귀지스쿨
옥상과 강의실에서 맹연습에 돌입했다. 술김에 했어도 약속은 약속이라 서로서로 격려해가며
칼(?)을 갈았다. 젬베를 연습하면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지만 점점 맞아가는 리듬에
아픈줄도 모르고 둥둥 신나게 쳤던 기억이 새록새록난다. 

 연습을 하면할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는 거리고 나가 거리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로
했다. '지피지기면 100전 100승'이라고 거리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고 이왕할거면 수입이 
짭잘해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기위해서?!^^;;

 사전조사를 마치고 가까운 차이니스 레스토랑에서 결의를 다지며 저녁식사를 하고 맥주를 한잔
들이켰다. "내일부터 공연시작하자!"라고 외치며 대박을 기원했다. 그리고 부른 배를 껴안고 식당
을 나서며 이군이 한마디 했다. "그냥 우리 오늘부터할까?" 우린 술도 좀오르고 해서 막무가내로
"콜!"을 외쳤다.

 우리가 봐놨던 장소가 보인다. 이제 자리를 잡고 튜닝을 시작한다. 아 근데 이기분은 뭐지? 너무
떨리고 우리공연이 초라하면 어쩌나...(공연이라 하기엔 너무 부족한 실력이지만..)하는 생각이
물밀듯이 들이닥치며 술이 확깼다!  정말 술이 왠수라고 후회를 마음속으로 100번은했다. 나중에
모여서 한 이야기인데 나를 제외한 두 형들도 같은 마음이였다고....ㅎㅎㅎ




노래를 좋아하는 세계인.


우리는 한국노래를 선택했다.
취지는 한국의 노래를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아주 거대한 명목하였지만 실상 외국노래의
코드를 일일히 따고 가사를 외우는것이 쉽지
않았다는...ㅎㅎㅎ
또 어눌한 영어로 노래를 했을때 현지인들의
반응이 무서웠던 것도 없지않아 있었다.ㅋㅋ
 
우린 공연경험이 별로 없는지라 술의 힘을 빌
리자 했고 옆사진에 보이다 싶이 참이슬이 예
술의 혼을 불태우는 촉매제가 됐다.ㅋㅋ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노래를 시작했다.
故김광석의 '일어나', '바람이 불어오는곳', 
'그녀가 처음 울던날'과 크라잉넛의 '좋지 아
니한가', 패닉의 '왼손잡이'등 잔잔한 노래와
신나는 노래를 번갈아 가며 연주했다.

아참! 앞에 언급하지 않았던게 있는데 지금
글 왼편에 탬버린을 들고있는 이군은 요요
마스터다.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정확히 기억
은 나지 않지만 2002년도 한국 요요대회 1위
2004년도 세계대회 2위를 했던 요요꿈나무
 

                     이군(26, 보컬,탬버린, 요요)
              

였다고한다. 그리고 요요를 하는것을 눈으로
확인하였고 유투브에서 경기동영상을 직접
확인했다. 이군에게 동의를 얻으면 주소 링크
를 걸어 놓아야겠다.ㅋㅋ 

 거리공연을 하면서 우리는 지나가는 나름의
관객들과 펍(Pub)테라스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만 했다. 노래 한가지
로는 안되겠다 싶어 신나는 반주에 이군의 
요요 퍼포먼스를 섞기로 했다. 예상보다 냉랭
한 반응이 이어져서 아마 이군이 뻘쭘했을거다.

 요요를 포기하고 우린 노래에 매진했다. 시간
이가면 갈수록 호흡이 잘맞는가 싶더니 어느새
우리의 돈바구니(사실 기타케이스)에는 센트와
유로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모이는 돈을 보며
더욱 신나게 연주를 하고 노래를 했다. 결과는
대성공. 우리나라의 노래들이 정말 예술성이
대단했다.하하하하하 지나가던 외국인들도 신기
했는지 가던걸음을 멈추고 동양인 3명의 퍼포먼

스를 지켜보았고 그럴수록 돈은 쌓여만갔고 하하..                                                                                                                          노군(26, 기타)


 노래가 끝날때마다 우리의 관객들은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정말 뿌듯하게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 골웨이의 인기밴드.


우리가 공연을 시작하고 그 다음날 부터 친구들이
우리의 공연을 보러 모이기 시작했고 나와 같이 
집을 셰어했었던 영국인 친구 레이첼은 공연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줬다. 그녀는 천재
한국인들이라며 지니어스 코리안을 나를 볼 때
마다 외쳐줬다.

 아일랜드에 관광을 온 외국인들이 우리를 카메라
에 담는 모습이 마치 유명 밴드의 공연을 담는 듯
하다고 우리 셋만 생각했다.ㅋㅋ 아마도 유럽여행
중 동양인의 버스킹은 거의 유일무이 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싶다. 

 





                나(25, 젬베)


보물이 된 나의 골웨이 라이프.


 어학연수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고 온
것 같다. 비단 내가 영어를 배우러 갔다 해도 거기
서 배울 것, 얻을 것은 수도 없이 많았다. 많은 친
구를 얻었고 영어도 나름 늘었으며 외국에서 홀로
살아남기와 어디서도 하기 힘든 경험인 거리공연
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와서도 만나면 이 공연 이야기를 꼭
하고는 하는데 거리공연을 할때의 뿌듯함도 뿌듯
함이지만 공연이 끝나고 이군의 집에 보여서 번
돈을 분배할때가 정말 쏠쏠했다. 돈도 돈이지만
우리가 이 타국땅에서 가진 것 하나없이 이렇게 
돈을 벌어 보았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평생에 남을 추억이라는 말 100번은 한거 같다.ㅋ
 
 비록 레파토리의 고갈로 공연은 5회정도 밖에 하지 않았지만 쏠솔하게?^^ 돈도 벌었고 정말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25살 아일랜드에서의 여름은  평생 잊지 못할 나의 귀중한
보물1호가 될 것이다. (It's been big news since I was in Galway in Republic of Ireland.)



ChQ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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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츠큐파 ChQ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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